마이리얼트립 BSP 1위? 항공권 실적 발표의 불편한 진실

어제(2025년 7월 2일) 마이리얼트립 이동건 대표가 링크드인에 올린 글이 화제다. "우리가 BSP 발권 1위를 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잠깐, 정확히 언제 기준으로 1위인가? 누가 집계한 데이터인가? 어떤 범위에서 1위인가? 구체적인 설명은 없었다. 이번 일은 한국 여행업계가 안고 있는 고질적 문제를 다시 한번 드러냈다. BSP 실적이라는 것이 과연 여행사의 진짜 실력을 보여주는 지표일까?

마이리얼트립 BSP 1위? 항공권 실적 발표의 불편한 진실
마이리얼트립 BSP 1등 선언?
마이리얼트립의 이동건 대표가 개인 SNS를 통해 6월 마지막 주에 자사가 BSP 실적에서 1위를 했다고 밝혔습니다.

BSP가 뭐길래 다들 1위라고 하나

BSP(Billing and Settlement Plan)는 쉽게 말해 항공권 판매대금을 정산해주는 시스템이다. 국제항공운송협회(IATA)가 운영하며, 여행사가 항공권을 팔면 이 시스템을 통해 항공사에 돈이 전달된다.

한국에는 1990년 4월에 도입됐고, 현재 약 450개 여행사가 가입되어 있다. 연간 거래 규모는 6-10조원. 어마어마한 돈이 오가는 시장이다.

현재 BSP 시장의 판도

2024년 기준으로 보면 하나투어와 인터파크트리플이 1, 2위를 번갈아가며 차지하고 있다. 2023년 상반기 기준으로 하나투어가 6,166억원, 인터파크가 5,795억원어치 항공권을 발권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점이 있다. 상위 20개 회사가 전체 발권액의 70%를 차지한다는 것. 극심한 쏠림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BSP 실적 분석] 2025년 5월
시장의 흐름을 이해하는 지표로서 BSP 실적은 꽤 큰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아직은 단순히 업계 순위 정도의 의미로 비춰지고 있어서 가볍게 흐름을 읽어보는 TravelBizTalk 시리즈, 시리즈라고 말은 하지만 언제까지 발행될지 아무도 모르는 시리즈, [BSP 실적 분석] 2025년 5월 실적 분석

450개 여행사만 쓰는 BSP, 나머지는?

여기서 첫 번째 문제가 드러난다. 한국에 여행사가 몇 개나 될까? 대략 4,500개 정도 된다. 그런데 BSP를 쓸 수 있는 곳은 450개뿐이다. 전체의 10%만 BSP를 이용한다는 얘기다.

왜 이럴까? BSP 가입 조건이 까다롭기 때문이다. 2억원 이상의 담보금을 내야 한다. 소규모 여행사들은 엄두도 못 낸다.

BSP (Billing and Settlement Plan)
몇가지 자료들을 종합해서 BSP에 대해서 약간 정리해 보았습니다. 딱히 재미도 없고 별 대단한 것도 아니니 그냥 참고용 자료 정도입니다. 지속적으로 업데이트 예정입니다.

그럼 나머지 90%는 어떻게 항공권을 팔까?

ATR(Agent Ticketing Request)이라는 방식을 쓴다. 쉽게 말해 다른 여행사나 항공사에 발권을 부탁하는 것이다. 당연히 수수료를 더 내야 하고, 수익성도 떨어진다.

이렇게 되면 BSP 실적이라는 게 전체 여행업계의 10%만 반영한다는 뜻이 된다. 나머지 90%는 아예 통계에서 빠진다.

가장 큰 문제: 아무도 정확한 숫자를 모른다

더 충격적인 사실이 있다. 현재 업계에 돌아다니는 BSP 실적은 공식 발표가 아니다. IATA는 이런 데이터를 공개하지 않는다. 그럼 어떻게 알까?

업계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자. "각 항공사들이 자기들 데이터를 모아서 추정하는 거예요. 그걸 또 비공식적으로 공유하고... 정확하다고 볼 수 없죠."

2018년에 한국 BSP 데이터 처리 센터가 싱가포르로 이전하면서 이런 문제는 더 심해졌다. 투명성? 기대하기 어렵다.

항공사들이 직접 파는 건 빠진다

BSP의 또 다른 맹점이 있다. 항공사가 직접 판매하는 항공권은 BSP 실적에 안 잡힌다.

요즘 누가 여행사 가서 항공권 사나? 대부분 항공사 홈페이지나 앱에서 직접 산다. 특히 저가항공사(LCC)의 경우, BSP를 통한 판매는 전체의 7-8%에 불과하다.

대형 항공사들도 마찬가지다. 과거에는 80-90%를 여행사를 통해 팔았지만, 지금은 70% 이하로 떨어졌다. BSP 실적만 보면 실제 항공권 시장의 절반도 파악할 수 없다는 얘기다.

항공권만 많이 팔면 1등 여행사?

여행사가 하는 일이 항공권 판매뿐일까? 패키지여행, 호텔 예약, 현지 투어, 비자 대행... 수많은 서비스를 제공한다.

그런데 BSP는 오직 항공권 발권액만 집계한다. 패키지여행을 아무리 많이 팔아도, 호텔을 아무리 많이 예약해줘도 BSP 순위에는 영향이 없다.

실제로 2024년 교원투어 사태가 이를 잘 보여준다. 패키지 예약 기준으로는 상위권이었지만, BSP 기준으로는 순위가 달랐다. 기준에 따라 순위가 왔다갔다 하니 논란이 생길 수밖에.

글로벌 공룡들이 들어오면서 더 꼬였다

2023년 9월, 세계 최대 온라인 여행사 익스피디아가 한국 BSP에 가입했다. 2024년부터 본격적으로 항공권을 팔기 시작했다.

이런 글로벌 대기업들이 들어오면 어떻게 될까? 막대한 자본력과 기술력으로 단숨에 실적을 끌어올릴 수 있다. 그럼 기존 한국 여행사들과 공정한 비교가 가능할까?

마이리얼트립 같은 디지털 플랫폼들도 마찬가지다. 전통적인 여행사와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사업을 한다. B2B 진출, 플랫폼 통합, 디지털 마케팅... BSP 실적을 급격히 늘릴 수 있는 방법은 많다.

그래서 누가 진짜 1등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아무도 모른다.

  • 공식 발표가 없다
  • 집계 기준이 제각각이다
  • 항공사 직판은 빠진다
  • 전체 여행사의 10%만 반영된다
  • 항공권 외 매출은 집계 안 된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1등"이라고 주장하는 건 무의미하다. 마치 안개 속에서 "내가 제일 앞에 있다"고 외치는 것과 같다.

이제는 바뀌어야 할 때

BSP 실적 중심의 평가는 더 이상 의미가 없다. 투자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왜곡된 정보를 제공할 뿐이다.

무엇이 필요할까?

  1. 정부나 업계 차원의 통합 데이터 시스템 - 신뢰할 수 있는 공식 통계가 필요하다
  2. 다양한 평가 지표 도입 - 항공권뿐 아니라 패키지, 호텔, 총매출 등을 종합적으로 봐야 한다
  3. 투명한 공개 원칙 - 집계 기준, 기간, 범위를 명확히 해야 한다

한국 여행업계가 건전하게 발전하려면, 이런 기본적인 인프라부터 제대로 갖춰야 한다. 불투명한 실적 발표로 소모적인 논쟁만 반복하는 건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진짜 1등이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소비자에게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BSP 순위 놀이는 이제 그만할 때가 됐다.


참고 자료

이 글을 작성하며 참고한 자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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