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계획 스타트업의 역설: 왜 수많은 플래너들이 사라지는가

여행 계획은 모든 여행자가 겪는 보편적 고충이다. 평균 10시간 이상 소요되는 복잡한 과정은 명백한 시장 기회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푸른 초원'을 향해 달려든 수많은 스타트업들은 왜 지속적으로 실패할까? AI 혁명의 물결 속에서도 독립형 여행 플래너들이 직면한 구조적 한계는 여전히 극복되지 않고 있다. 본 글에서는 한국 여행 계획 스타트업들의 성공과 실패 사례를 통해 이 산업의 근본적 딜레마를 해부하고, 지속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의 가능성을 탐색한다.

여행 계획 스타트업의 역설: 왜 수많은 플래너들이 사라지는가

1. 여행 계획 시장의 치명적 매력

여행 계획 스타트업들이 끊임없이 등장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문제가 너무나 가시적이고 보편적이기 때문이다. 정부 지원 관광 벤처부터 대학생 창업 프로젝트까지, 진입 장벽이 낮아 보이는 이 시장은 수많은 창업가들을 유혹한다.

그러나 이러한 가시성이 오히려 함정이다. 기술 중심 창업가들은 사용자의 문제는 보지만, 그 문제를 만들어내는 여행 산업의 뿌리 깊은 구조적 복잡성은 간과한다. 공급망, 실시간 재고 관리, 가격 책정 시스템의 파편화, 그리고 무엇보다 인간의 비합리적인 여행 욕구와 행동 패턴은 단순한 UI 개선이나 알고리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난제들이다.


2. 현대 플래너들의 세 가지 원형

니치 스페셜리스트: 작지만 확실한 시장

캠핑톡과 스쿨트립은 광범위한 시장 대신 특정 수직 계열에 집중하여 성공한 사례다. 캠핑톡은 전국 450개 캠핑장과 제휴를 맺고 거래액을 17억에서 290억으로 성장시켰다. 스쿨트립은 불투명했던 교육 여행 시장에 가격 투명성을 제공하며 B2B 틈새시장을 공략했다.

경험 큐레이터: 양면 시장의 딜레마

웰키아이앤씨처럼 '숨겨진 관광 명소'를 발굴하여 현지 경험을 중개하는 모델은 여행자와 현지 제공자라는 두 사용자 그룹을 동시에 유치해야 하는 '닭과 달걀' 문제에 직면한다.

통합 플랫폼: 슈퍼앱을 향한 진화

마이리얼트립과 트리플은 단순 계획을 넘어 항공, 숙박, 액티비티까지 포괄하는 종합 플랫폼으로 진화했다. 이들은 니치에서 시작해 포괄적 플랫폼으로 성장하는 궤적을 보여준다.


3. 가치 창출과 수익 포착의 불일치

여행 계획 스타트업이 직면하는 가장 근본적인 갈등은 명확하다. 사용자를 위한 가치는 계획 단계에서 생성되지만, 수익은 예약이라는 거래 단계에서 발생한다.

한 사용자가 특정 앱에서 10시간 동안 완벽한 파리 여행 일정을 만들었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나 실제 예약은 스카이스캐너, 부킹닷컴, 바이어터에서 각각 진행한다. 가장 많은 노력을 기울인 계획 앱은 단 한 푼의 수익도 얻지 못한다.

이것이 바로 모든 성공적인 여행 계획 스타트업이 필연적으로 거래 기능을 통합하는 이유다. '순수한' 여행 플래너는 지속 가능한 독립 비즈니스가 아닌, 수익 엔진을 찾아 헤매는 '기능'에 불과하다.


4. AI 혁명의 양면성

1세대 AI: 최적화의 함정

마이로(MYRO)는 머신러닝 기반 K-평균 군집화 기술로 영업시간, 휴무일 등을 고려한 최적 동선을 생성한다. 그러나 이러한 기술적 우위에도 불구하고 제휴 링크에 의존하는 수익 구조로 인해 B2B로의 피봇을 모색하고 있다.

여행 경로 최적화는 AI가 잘 해결할 수 있는 수학적 문제지만, 일회성 가치 제안에 그친다. 사용자들은 구글맵 같은 무료 도구로도 '충분히 좋은' 계획이 가능한 상황에서 프리미엄을 지불할 의사가 없다.

2세대 AI: 범용화의 위험

챗GPT의 등장으로 마이리얼트립은 단 이틀 만에 'AI 여행플래너'를 출시했다. 레일라, 원더플랜, 아이플랜 등 해외 서비스들도 생성형 AI 기반 대화형 플래너를 선보였다.

그러나 이는 새로운 위험을 내포한다. 챗GPT 같은 범용 AI는 기본적인 여행 계획 생성을 누구나 쉽게 할 수 있게 만들었다. AI가 생성한 계획 자체는 더 이상 방어 가능한 경쟁 우위가 아닌 '커머디티'가 되었다.

실행의 간극: 백엔드 통합의 악몽

마이리얼트립의 'AI가 생성한 계획을 단일 패키지로 묶어 판매하는' 프로젝트 '마이팩'이 잠정 중단된 사실은 시사적이다. 항공권, 숙박, 액티비티의 상이한 유통 시스템을 통합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준다.

그럴듯한 여행 일정을 생성하는 것은 쉽다. 하지만 전 세계의 파편화된 여행 산업 시스템과 연동하여 원활하게 예약 가능한 패키지를 만드는 것은 기념비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5. M&A를 통한 생존 전략

마이리얼트립: 외과수술적 인수

마이리얼트립은 스타트립(K-콘텐츠 인바운드), 동키(가족 여행), 오피스 제주(워케이션)를 인수하며 새로운 시장과 고객층을 확보했다. 이는 처음부터 개발하는 것보다 이미 검증된 스타트업을 인수하는 것이 효율적임을 보여준다.

야놀자-인터파크-트리플: 메가 플랫폼의 탄생

야놀자가 인터파크를 2,940억 원에 인수하고, 이후 트리플까지 흡수한 것은 '슈퍼앱' 전략의 극단적 사례다. 영감(트리플)부터 예약(인터파크), 숙박(야놀자)까지 여행의 모든 단계를 하나의 플랫폼에서 해결하려는 시도다.

그러나 서로 다른 기술 스택과 기업 문화를 가진 거대 조직들의 통합은 새로운 도전이다. '놀 유니버스'라는 브랜딩으로 재정비를 시도하는 것은 이러한 통합의 어려움을 방증한다.


6. 실패의 구조적 원인

1: 수익화의 막다른 길

사용자는 항공권과 호텔에는 기꺼이 돈을 지불하지만, 계획 자체에는 비용을 지불하지 않는다. 성공적으로 평가받는 마이로조차 B2B로 전환을 모색한다는 것은 B2C 계획 시장의 직접 수익화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준다.

2: '충분히 좋은' 대안의 문제

구글맵, 구글 문서, 그리고 이제는 챗GPT까지. 무료이면서 '충분히 좋은' 대안들이 넘쳐난다. 새로운 앱이 사용자를 유치하려면 기존 방식보다 '10배 더 나은'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

3: 행동적 불일치

많은 스타트업이 이성적이고 꼼꼼한 '플래너' 페르소나를 위해 설계하지만, 실제 여행자들은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다. 상당수는 조사와 발견의 과정 자체를 즐기며, 완벽하게 자동화된 계획을 원하지 않는다.

4: 통합의 악몽

글로벌 여행 산업은 수십 년 된 GDS, 현대적 API, 수동 예약 시스템이 뒤섞인 복잡한 패치워크다. 신생 스타트업이 이를 통합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7. 미래: 독립형 플래너의 종말

제품이 아닌 기능으로

여행 계획의 미래는 독립형 앱이 아니라 포괄적인 '슈퍼앱' 내부의 기능으로 존재할 것이다. 슈퍼앱은 이미 거래를 통한 수익화 엔진을 내장하고 있으며, 통합을 통해 10배 더 나은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

신규 진입자를 위한 경로

그렇다면 새로운 스타트업에게는 기회가 없을까? 두 가지 경로가 존재한다:

초니치 스페셜리스트: 럭셔리 여행, 전문 취미 여행 등 기존 플레이어들이 제대로 서비스하지 못하는 고부가가치 수직 계열을 완벽하게 장악하라.

B2B/화이트 라벨 조력자: 레일라처럼 계획 기술 자체를 SaaS 형태로 판매하라. 이미 고객을 확보했지만 기술이 부족한 여행사나 콘텐츠 크리에이터에게 AI 엔진을 제공하는 인프라 제공자가 되라.


결론

여행 계획 스타트업의 역사는 명백한 문제를 해결하려는 수많은 시도와 그 실패의 연대기다. AI 기술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가치 창출과 수익 포착의 불일치라는 근본적 딜레마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독립형 여행 플래너로 유니콘이 되겠다는 꿈은 대부분 신기루다. 성공은 고립이 아닌 통합을 통해 발견된다. 수직적으로 특정 니치를 깊게 파고들거나, 수평적으로 거대한 슈퍼앱의 한 기능으로 흡수되는 것만이 생존의 길이다.

여행 계획이라는 기능은 영원할 것이다. 하지만 독립형 플래너는 이미 죽었다. 미래는 통합하고, 전문화하며, 산업을 가능하게 하는 자들의 것이다. 수많은 기업들이 여행 플래너 기능을 제공하지만, 이제는 지속가능성의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해결해야 할 시점이다.


참고 자료

  1. AI 여행 플래너: MYRO
  2. 스타트업이 이끄는 관광 혁신 - 플래텀
  3. 건국대 학생 창업 앱 '인스턴트립' - 조선일보
  4. 여행 스타트업, 이렇게하면 망한다 - 벤처스퀘어
  5. 제2의 야놀자를 꿈꾼다 - 한국경제
  6. 흑자전환한 마이리얼트립의 '자유여행 원톱' 전략 - 바이라인
  7. 트리플, 가입자 800만 돌파 - 세계여행신문
  8. 여행계획도 AI로 - 시사저널e
  9. 마이리얼트립, 'AI 여행플래너' 출시 - 유니콘팩토리
  10. 48시간 만에 국내 여행 업계 최초 AI 서비스 만든 사연 - 요즘IT
  11. 여행 계획을 위한 최고의 AI 도구 5가지 - Unite.AI
  12. Meet Layla: Your Personal AI Travel Planner
  13. Wonderplan - Best AI Trip Planner
  14. iPlan.ai - AI Travel Planner
  15. Best Deals - Wonderplan AI
  16. AI Trip Planner Roam Around Becomes Layla
  17. For Partners - Layla
  18. 불확실성의 시대를 여행하다, 마이리얼트립 - 아산 기업가정신 리뷰
  19. 위기를 기회로, 여행 슈퍼앱의 탄생 - 마이리얼트립
  20. '인터파크트리플에 통합' 뒤숭숭한 야놀자 - 비즈한국
  21. 인터파크, '트리플' 합병 - 플래텀
  22. 스타트업 대표 7인 "난 이래서 실패했었다" - 한국경제
  23. 한국 여행 스타트업 리더가 주목한 2023년 트렌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