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지갑을 노린다: 트래블카드 전쟁의 숨은 승자는 누구인가?
여행 가방 속 새로운 필수품, 트래블카드. 하지만 '수수료 0원'이라는 달콤한 혜택 뒤에는 당신의 지갑을 차지하려는 거대 기업들의 보이지 않는 전쟁이 숨어있습니다. 이 전쟁의 본질은 무엇이며, 진짜 승자는 과연 누구일까요?

1. 과거로부터의 교훈: 트래블카드는 어떻게 시작되었나
모든 혁신은 ‘필요’에서 출발합니다. 트래블카드의 여정 역시 여행자들이 마주했던 오랜 문제들을 해결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이야기의 시작은 현금 소지의 위험을 해결하기 위함이었습니다. 1891년 아메리칸 엑스프레스가 대중화한 ‘여행자수표(Traveler's Cheque)’는 분실 및 도난 시 재발급이 가능하다는 장점으로 여행의 ‘안전’을 획기적으로 높였습니다.
이후 혁신의 초점은 ‘편의’로 이동했습니다. 1950년대 다이너스 클럽과 아메리칸 엑스프레스가 이끈 ‘차지카드(Charge Card)’ 시대를 지나 , 마침내 1958년 비자(Visa)의 전신인 ‘뱅크아메리카드(BankAmericard)’가 등장하며 지금의 신용카드 시대가 열렸습니다. 이로써 전 세계 어디서든 결제가 가능한 편리함을 얻었지만, 동시에 새로운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바로 국제 브랜드 수수료, 해외 서비스 수수료, 환전 스프레드 등 복잡하게 얽힌 비용 구조였죠.
2. 새로운 모델의 제시: 현대적 트래블카드의 탄생
기술을 기반으로 한 핀테크 기업들은 바로 이 ‘비싼 비용 구조’라는 기회를 포착했습니다. 와이즈(Wise), 레볼루트(Revolut)와 같은 도전자들은 여러 외화를 하나의 디지털 계좌에 담고, 실제 시장 환율과 낮은 수수료를 적용하는 ‘선불 충전식 다중 통화 카드’라는 해법을 제시했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이들의 비즈니스 모델입니다. 이들은 ‘수수료 무료’라는 파격적인 혜택을 제공하면서 어떻게 수익을 창출할까요? 보고서는 그 핵심 중 하나로 ‘플로트(float) 수익’ 모델을 꼽습니다. 이는 고객이 미리 예치해 둔 막대한 규모의 무이자 충전금을 운용하여 이자 수익을 얻는 구조입니다. 놀랍게도 이는 100여 년 전 여행자수표의 수익 모델이 디지털 시대에 맞게 부활한 것입니다.
3. 한국의 격전지: 당신의 지갑을 차지하기 위한 전쟁
포스트 팬데믹과 함께 억눌렸던 해외여행 수요가 폭발하면서, 한국의 트래블카드 시장은 그야말로 가장 뜨거운 격전지가 되었습니다. 이 시장은 현재 크게 세 세력이 충돌하며 흥미로운 구도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핀테크 선구자, 거대 은행의 반격, 그리고 막강한 플랫폼을 등에 업은 빅테크의 습격이 바로 그것이죠.
자, 그럼 각 플레이어들의 카드를 직접 비교하며 그들의 전략을 해부해 볼까요?
라운드 1: 핵심 금융 기능 - 누가 더 유리한 조건을 제공하는가?
여행자에게 가장 직접적으로 와닿는 부분은 역시 환전과 한도입니다.
- 지원 통화와 환전/재환전 수수료: 가장 넓은 영토를 가진 것은 트래블월렛입니다. 약 46종의 통화를 지원하여 희귀한 여행지를 탐험하는 이들에게 필수적이죠. 대부분의 카드가 주요 통화 환전 수수료는 면제이지만, 여행 후 남은 돈을 다시 원화로 바꾸는 ‘재환전’에서 차이가 드러납니다. 여기서토스뱅크카드는 ‘평생 재환전 수수료 무료’라는 파격적인 정책으로 차별화에 성공했습니다. 신한 SOL트래블은 0.5%, 트래블로그와 트래블월렛은 1%의 수수료를 부과합니다.
- 충전 및 출금 한도: 이 영역에서는 은행 기반 카드들이 강점을 보입니다.토스뱅크카드는 1억 원, 신한 SOL트래블은 약 6,500만 원의 높은 충전 한도를 제공하여 고액 결제나 장기 여행객에게 유리합니다. 반면트래블월렛과 하나 트래블로그는 각각 200만 원, 300만 원으로 한도가 상대적으로 낮아 단기 여행에 더 적합합니다. ATM 출금 한도 역시하나 트래블로그와 토스뱅크카드가 월 $10,000로 높은 수준을 자랑합니다.
라운드 2: 부가 혜택과 생태계 - 누가 더 나은 경험을 설계하는가?
수수료 경쟁이 상향 평준화되면서, 이제 승부는 ‘총체적인 경험’에서 갈리고 있습니다.
- 여행 특화 혜택: 신한 SOL트래블은 전월 실적에 따라 연 2회 공항 라운지 무료 이용 혜택을 제공하며 편의를 중시하는 여행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 일상에서의 쓰임새: 신한 SOL트래블과 토스뱅크카드는 편의점, 대중교통 할인 등 국내에서도 유용한 혜택을 제공합니다. 이는 사용자가 여행이 끝난 후에도 카드를 계속 지갑에 넣어두게 만드는, 이른바 ‘원-카드(One-Card)’ 전략입니다. 반면트래블월렛과 트래블로그는 해외 사용에 더 집중된 모습을 보입니다.
- 연동 편의성: 트래블월렛은 사용하던 어떤 은행 계좌와도 연동이 가능해 편리하지만 ,하나, 신한, 토스의 카드는 각 사의 은행 계좌를 필수로 개설해야 합니다. 이는 다소 불편할 수 있지만, 고객을 자사 플랫폼에 묶어두는 강력한 ‘잠금(Lock-in) 효과’를 발생시킵니다.
진짜 이유: 트래블카드는 왜 싸우는가?
하지만 진짜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카드사들이 '돈 안 되는' 트래블카드에 이토록 총력을 기울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본 글에서는 이 경쟁의 본질이 단순히 카드 수수료 수익에 있지 않다고 명확히 선언합니다. 이는 수익성 높은 20~40대 핵심 고객을 확보하고 , 자사의 금융 생태계로 끌어들이기 위한 ‘대리전(Proxy War)’입니다.
- 은행에게 트래블카드는 ‘방패’입니다. 토스와 같은 빅테크 플랫폼으로 핵심 고객이 이탈하는 것을 막기 위한 필사적인 방어 수단이죠.
- 빅테크에게 트래블카드는 ‘창’입니다. 이미 확보한 수많은 사용자를 자사 금융 생태계에 더욱 깊숙이 묶어두고, 송금이나 결제를 넘어 예금, 대출까지 아우르는 주거래 관계를 확보하기 위한 공격적인 무기입니다.
결론적으로,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트래블카드는 그 자체로 완결된 상품이 아닙니다. 이것은 고객의 금융 생활 전체를 차지하기 위한 거대한 전쟁의 최전선에 놓인 ‘전략적 무기’인 셈입니다.
4. 다가올 미래: 카드는 사라지고 플랫폼이 남는다
트래블카드의 진화는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오히려 지금의 경쟁은 더 큰 변화를 향한 과도기일 뿐입니다. 앞으로의 경쟁 구도는 물리적인 카드가 아닌, 그 이면의 기술과 플랫폼에 의해 결정될 것입니다.
필자는 ‘트래블카드’가 독립 상품이 아닌, 거대한 ‘금융 슈퍼앱’의 핵심 ‘기능’으로 흡수될 것이라 예측합니다. 경쟁의 본질이 플라스틱 카드에서 모바일 앱의 경험으로 이동하면서, 진정한 승자는 여행의 전 과정을 아우르는 가장 강력한 플랫폼을 구축하는 자가 될 것입니다.
이 미래를 이끌 핵심 기술은 다음과 같습니다.
- AI 기반 초개인화: 인공지능이 환율 변동을 예측해 “지금이 엔화를 충전할 최적기입니다”와 같이 선제적인 금융 자문을 제공하는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 결제 토큰화: 애플페이처럼 실제 카드번호를 암호화된 ‘토큰’으로 대체하는 기술은 디지털 월렛 생태계의 보안과 편의성을 책임지는 핵심 기반입니다.
- 궁극의 게임 체인저, CBDC: 장기적으로 가장 큰 변화를 몰고 올 기술은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입니다. 전 세계 중앙은행의 90% 이상이 CBDC를 연구 중이며, BIS(국제결제은행) 주도의 ‘mBridge 프로젝트’처럼 각국 CBDC를 직접 교환하는 결제망이 상용화되면, 중개 은행과 수수료 모델이 불필요해져 국제 결제가 거의 무비용에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결론: 당신의 지갑은 어떤 미래를 선택할 것인가?
트래블카드 시장의 ‘수수료 무료’ 경쟁은 소비자 금융의 미래가 펼쳐지는 거대한 실험장입니다. 이 현상은 금융 서비스가 개별 상품(unbundling)으로 해체되었다가, 다시 강력한 플랫폼 안으로 통합(re-bundling)되는 거대한 흐름을 보여줍니다.
따라서 이제 우리는 단순히 수수료가 저렴한 카드를 고르는 것을 넘어, 나의 금융 생활 전반을 맡길 수 있는 ‘플랫폼’을 선택해야 합니다. 안정적인 은행의 생태계를 선택할 것인가, 혁신적인 핀테크의 경험을 선택할 것인가? 한 장의 카드로 시작된 이 여정은, 결국 우리의 돈과 데이터가 어디에서 어떻게 관리될 것인지에 대한 중요한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Appendix: 주요 참고 자료 목록
- Traveler s Checks: On the Go: The Impact of Traveler s Checks on M1 Money Supply:https://fastercapital.com/content/Traveler-s-Checks--On-the-Go--The-Impact-of-Traveler-s-Checks-on-M1-Money-Supply.html
- The History of Credit Cards - Experian:https://www.experian.com/blogs/ask-experian/the-history-of-credit-cards/
- The History of the Credit Card | Swipesum:https://www.swipesum.com/insights/history-of-the-credit-card
- 여행객 늘자 트래블카드 경쟁 '활활'…올해 승자는? - 여행신문:https://www.traveltimes.co.kr/news/articleView.html?idxno=413291
- 트래블월렛 카드 단점? 트래블카드 비교 총정리 - 뱅크샐러드:https://www.banksalad.com/articles/%ED%8A%B8%EB%9E%98%EB%B8%94%EC%9B%94%EB%A0%9B-%ED%95%B4%EC%99%B8%EA%B2%B0%EC%A0%9C%EC%B9%B4%EB%93%9C-%ED%8A%B8%EB%9E%98%EB%B8%94%EC%B9%B4%EB%93%9C-%ED%99%98%EC%A0%84%EC%88%98%EC%88%98%EB%A3%8C-%EB%AC%B4%EB%A3%8C
- [비교] 해외여행 환전, 어떤 카드가 유리할까? 토스뱅크부터 트래블로그까지! - 카드고릴라:https://m.card-gorilla.com/contents/detail/2867
- 트래블카드 5종, 선택 어렵다면 따져봐야 할 것 - 바이라인네트워크:https://byline.network/2024/04/26-339/
- 해외이용대금청구>해외이용안내>카드이용안내>고객센터 - BC카드:https://www.bccard.com/app/card/ContentsLinkActn.do?pgm_id=ind0651
- 광고 해외여행 트래블카드 이걸로 쓰세요! 2025년 무료 체크카드 5개 추천 - YouTube:https://www.youtube.com/watch?v=HwuWK2zTWn8
- 카드사들이 '돈 안되는' 트래블카드에 총력 쏟는 이유는?... - 녹색경제신문:https://www.greened.kr/news/articleView.html?idxno=318357
- '트래블월렛', 금융권의 트래블카드 전쟁에도 괜찮을까 - 브런치스토리:https://brunch.co.kr/@dragonattack/15
- The state of super apps 2022: Statistics & trends - Adjust:https://www.adjust.com/blog/the-state-of-super-apps-2022-statistics-and-trends/
- K-핀테크 글로벌화를 통한 성장 지원 2025년 제1차 「핀테크 지원협의체」 개최 - KDI 경제교육:https://eiec.kdi.re.kr/policy/materialView.do?num=263034
- AI 기반 글로벌 금융 산업의 변화: 전환 사례를 통한 시사점 - frameout:https://www.frameout.com/insight-news/ai-finance-ax-strategy
- 국내외 AI 금융 컨시어지 서비스 사례와 시사점 - 우리금융경영연구소:https://www.wfri.re.kr/ko/mo/research_report/research_report.php?idx=755&page_type=view&mode=view
- 토큰화란 무엇인가요? - IBM:https://www.ibm.com/kr-ko/think/topics/tokenization
- The Fed - Implications of a U.S. CBDC for International Payments and the Role of the Dollar:https://www.federalreserve.gov/econres/notes/feds-notes/implications-of-a-u-s-cbdc-for-international-payments-and-the-role-of-the-dollar-20240216.html
- Project mBridge reached minimum viable product stage - Bank for International Settlements:https://www.bis.org/about/bisih/topics/cbdc/mcbdc_bridge.htm
덧) 머지 않은 미래에.. 트래블카드를 통한 외환밀반출에 대한 규제 정책이 나오게 되지 않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