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보험, 팔리지 않는 진짜 이유와 다시 팔리기 위한 길

여행자보험은 팬데믹 이후 필수품으로 떠올랐지만, 여전히 OTA에서는 잘 팔리지 않는다. 낙관 편향, 불신, 번거로운 UX가 판매를 막는다. 이제 필요한 건 ‘체크박스’가 아니라 ‘경험 재설계’다. 고객이 안심을 체감하는 순간, 보험은 부가상품이 아닌 여행의 마지막 퍼즐이 된다.

여행자보험, 팔리지 않는 진짜 이유와 다시 팔리기 위한 길

여행의 기대와 불안 사이—고객의 마음부터 보자

나는 여행자보험을 떠올리면 늘 복합적인 감정이 든다. 여행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설레지만, 동시에 불안하다. 항공 지연, 짐 분실, 해외 의료비 폭탄 같은 변수는 언제든 닥칠 수 있다. 팬데믹은 그 불안을 가시화했고, 사람들은 이제 보험을 ‘있으면 좋은 것’이 아니라 ‘없으면 불안한 것’으로 보기 시작했다. 글로벌 시장은 연 14% 성장세를 보이고, 한국 역시 2023년 원수보험료가 팬데믹 이전을 넘어섰다 . 그런데 정작 OTA에서의 가입률은 20~30% 수준에 불과하다. 수요는 늘었는데, 구매는 늘지 않는다. 바로 이 간극이 우리가 파헤쳐야 할 문제다.

보호가 압박으로 바뀌는 순간—체크박스의 착시

OTA의 현재 판매 방식은 실패를 예고한다. 예약의 마지막 단계에서 튀어나오는 체크박스, 복잡한 플랜 비교, 자동 선택된 옵션. 고객은 이를 ‘보호’가 아니라 ‘압박’으로 느낀다. Expedia가 보험 첨부율 감소로 기타 수익이 17% 줄었다고 발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 최근 내가 만난 OTA 디렉터는 이렇게 말했다. “보험은 팔아서 욕먹느니 안 파는 게 낫습니다.” 이 말은 냉소가 아니라 경험 실패의 자백이다. 지금 방식으로는 고객의 신뢰를 얻을 수 없다.

Add-on의 저주—채널과 고객층의 불일치

전통 여행사는 패키지에 보험을 번들로 포함시켜, 고객은 선택하지 않아도 자동 가입된다. 가입률은 사실상 100%다 . OTA는 다르다. 고객이 필요성을 느끼고, 직접 클릭해야 한다. 게다가 OTA의 핵심 고객은 20~40대 자유여행객이다. 자기 결정권을 중시하고, 가격에 민감한 세대다. 이들에게 보험 권유는 추가비용 유도로 보인다. 그래서 가입률은 구조적으로 낮다. 여기에는 채널과 타깃의 뚜렷한 불일치가 깔려 있다.

‘나한텐 일어나지 않을 거야’—심리 장벽

낙관 편향은 가장 큰 적이다. 실제 설문조사에서 보험을 사지 않은 이유 1위가 “이전 여행에서 필요 없었기 때문”이었다 . 여기에 정보 부족이 겹친다. 20대 여행자의 절반은 가입 경험이 없고, 그중 절반 가까이는 “가입 방법을 몰라서”였다. 불신도 심각하다. 한국 여행자의 절반 이상이 보장 내용과 청구 경험 불만으로 “다음엔 다른 채널을 선택하겠다”고 답했다 . 고객은 보험을 ‘돈만 내고 못 받는 서비스’로 여긴다. 이 인식을 바꾸지 않는 한, 아무리 조건을 바꿔도 가입은 늘지 않는다.

언어의 실패—숫자가 아닌 상황을 팔아야 한다

보험이 팔리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설명의 방식이다. “배상책임 2천만 원 보장” 같은 문구는 숫자에 불과하다. 고객은 숫자와 감정적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반면 “에어비앤비 숙소에서 꽃병을 깨뜨려도 보장됩니다”라는 문장은 고객의 일상적 상상을 자극한다. 보고서가 권고하듯이, 의료·취소·수하물 같은 핵심 리스크 세 가지를 아이콘과 간단한 언어로 보여주는 게 훨씬 효과적이다 . 결국 고객은 보험의 ‘항목’이 아니라 ‘상황’을 사고 싶어 한다.


이제 필요한 건 경험의 재설계다

여기까지가 원인 분석이라면, 이제 답을 말해야 한다. 나는 해법이 ‘경험 재설계’라고 믿는다. 단순히 옵션을 붙이는 방식이 아니라, 고객이 ‘안심’을 실제로 체감하는 구조를 다시 만들어야 한다.

첫째, 맥락적 제안이다. 환불 불가 호텔을 예약한 직후 “예약금을 지키시겠습니까?”라고 묻는 것 . 이건 강매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보호 제안이다. 데이터도 이를 뒷받침한다. 여행자의 45%가 전통 보험사보다 OTA·항공사를 통한 가입을 선호한다고 답했고, 유럽 OTA와 항공사 92%는 보험을 구매 플로우에 직접 통합했다 .

둘째, 초개인화 추천이다. 여행지 의료비 수준, 여행 목적, 동행인 구성 같은 데이터를 활용해 최적의 플랜을 자동으로 매칭하는 것이다. 정적인 골드·실버·브론즈 대신, 고객 여정에 맞는 하나의 플랜을 추천하는 방식이다.

셋째, 청구 경험의 혁신이다. 지금까지의 불신은 대부분 청구 단계에서 만들어졌다. “막상 보상받으려니 안 된다”는 체험이 쌓이며 고객은 멀어진다. 파라메트릭 보험처럼 항공 지연 시 자동으로 보상이 지급되는 구조 는 이 문제를 해결한다. 고객이 ‘청구’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지 않아도 보상이 이루어지는 경험, 그것이 진짜 신뢰를 만든다.

넷째, 언어와 디자인의 재구성이다. 보험 약관을 단순화하는 것만이 아니라, 고객이 이해할 수 있는 시각적 표현으로 바꾸는 일이다. 복잡한 플랜 대신 “이 여행에서 당신이 걱정해야 할 위험 세 가지와, 그에 대한 해결책”으로 전달해야 한다. 글자가 아니라 그림, 약관이 아니라 스토리로 설득해야 한다.


보험은 상품이 아니라 경험이다

나는 결국 이렇게 정리하고 싶다. 여행자보험은 보험사가 만드는 ‘상품’이 아니라, OTA가 설계해야 할 ‘경험’이다. 지금까지 업계는 수수료율만 보고 판매를 밀어붙였고, 결과는 고객 불신과 낮은 가입률이었다. 이제는 반대로 가야 한다. 고객 경험을 바꾸면, 수익은 자연히 따라온다.


여행을 완성하는 마지막 퍼즐은 보험이다

여행자보험은 업계가 외면해온 애매한 옵션이 아니라, 고객의 여정을 끝까지 책임지는 마지막 안전망이다. OTA든, 보험사든, 지금 필요한 것은 체크박스가 아니라 신뢰이고, 강매가 아니라 맥락이며, 비용이 아니라 안전의 가치다. 그 단순한 진실을 외면한다면 이 시장은 영영 열리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고객에게 보험을 팔 준비가 되었는가, 아니면 안전을 팔 준비가 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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