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업계, '업계지'는 더 이상 필요 없는가?

여행 업계 기자 여러분, 지금 거울을 한 번 보십시오. 여러분의 기사는 누구를 향해 쓰여지고 있습니까? 독자들입니까, 아니면 광고주들입니까? 한때는 업계의 나침반이라 불렸던 업계지가 이제는 '업계의 찌라시'로 전락했다는 혹독한 비판을 듣고 있습니다. 왜 이런 소리를 듣는지, 그 뼈아픈 현실을 직시해야만 합니다.

여행 업계, '업계지'는 더 이상 필요 없는가?

1. 격변의 시장, 멈춰버린 편집 테이블

팬데믹은 단순히 여행 시장을 주춤하게 한 것이 아니라, 근본부터 뒤흔들었습니다. 수많은 여행사가 문을 닫았고, 살아남은 회사들도 수익 구조가 망가진 채 회복을 맞았습니다. 숫자는 돌아왔지만 구성이 바뀌었습니다. 모두가 알다시피, 전통적인 패키지여행에서 자유여행(FIT)으로 무게중심이 이동했습니다. 자연히 전통 여행사들의 존재감은 줄었고, 업계지의 주수익원인 광고 예산은 가장 먼저 접혔습니다.

이때 업계지는 무엇을 했습니까? 심층 해설과 구조 분석은 드물었고, 그 빈자리를 채운 건 이벤트·행사 스케치, 보도자료 재가공 기사였습니다. 산업은 숨 가쁘게 움직이는데, 편집 테이블은 과거에 멈춰 있었습니다.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기사는 더 이상 업계의 의사결정에 필요한 인사이트를 제공할 수 없습니다.

2. ‘게이트키퍼’는 이미 자리를 잃었다

과거에는 업계지가 정보를 선별하고 가공하여 전달하는 ‘게이트키퍼’였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 자리는 완전히 대체되었습니다. 상품 기획자들은 더 이상 종이 지면을 뒤적이지 않습니다. 유튜브의 생생한 실사용 리뷰, 온라인 커뮤니티의 노하우, AI의 초개인화된 추천이 그들의 의사결정을 좌우합니다. 속도와 깊이, 모두에서 업계지는 이미 1순위 정보 채널이 아닙니다.

문제는 업계지가 새로운 역할을 찾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관문이 사라졌다면, 이제는 메타 해설이나 데이터 교정, 리스크 경보 같은 새로운 역할을 가져가야 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선정·편집’이라는 과거의 관성만 남았습니다. 관문이 사라졌는데, 아직도 스스로를 관문지기라 믿는 우스꽝스러운 형국입니다.

3. 독립성을 잃은 순간, 어젠다도 사라졌다

가장 아픈 대목입니다. 항공사, 여행사, 관광청이 주요 광고주인 구조에서 독립적인 비판 기사와 심층 취재는 곧바로 조직 리스크로 직결됩니다. 그래서 선택지는 '보도자료 재가공'뿐이었죠. 헤드라인만 바꿔 돌아오는 똑같은 기사들 속에서 업계의 방향을 제시하는 '어젠다 세팅' 능력은 증발해버렸습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검증 기능의 약화입니다. 루머가 돌면 진위를 가려야 합니다. 그러나 팩트체크, 데이터 대조, 당사자 반론 수렴 같은 저널리즘의 기본기가 비어 있습니다. 위기 상황에서 업계지가 첫 번째 레퍼런스가 되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독자들이 업계지에서 신뢰를 찾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4. 불투명한 내일, 행사 보도만으로는 살 수 없다

광고 감소를 메우려 컨퍼런스나 이벤트 보도로 수익원을 넓히려는 시도는 눈물겹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주도권이 없는 한, 여러분은 거대 플랫폼이 주최하는 행사를 보도하는 '부속품'에 머물 뿐입니다. 게다가 젊은 실무자들은 종이 신문을 구독하지 않습니다. 독자층은 점점 고령화되고, 신규 유입은 막혔습니다. 이 상태로는 생존 전략조차 될 수 없습니다. 지금의 모습으로는 그저 표류하다 사라질 뿐입니다.

5. 마지막 전환: 기록자가 아닌 분석자, 그리고 기준선 제공자

이대로 끝낼 수는 없습니다. 업계지는 여전히 오랜 네트워크와 맥락을 해석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그 강력한 자산을 묵혀두지 말고 지금 당장 태도와 모델을 바꿔야 합니다.

  • 역할 전환: 단순한 뉴스 전달자가 아니라, 업계의 의사결정권자에게 필요한 B2B 분석기관이 되어야 합니다. 구조적 원인, 정책 영향, 손익 민감도, 리스크 시나리오를 분석해 제시하십시오.
  • 편집 독립성 회복: 광고와 편집을 분리하겠다고 선언하고, 이해상충(Conflict of Interest)을 공개하는 것을 표준화하십시오. 팩트체크 프로토콜을 공개하여 검증을 습관이 아닌 제도로 만드십시오.
  • 데이터 우선: 가격, 좌석, 환불, 클레임 등 자체적인 지표를 구축하여 업계가 공통적으로 인용하는 ‘기준선 공급자’가 되십시오.
  • 수익 모델 혁신: 무료 기사만으로 버티지 마십시오. 심층 리포트, 브리핑, 특정 이슈에 대한 워룸 서비스 등을 유료로 제공하십시오. 행사 ‘보도’가 아니라 직접 포럼과 워크숍을 설계하여 업계 담론의 ‘룰’을 만드십시오.

결론: 전단지로 남을지, 기준이 될지

지금의 업계지는 업계를 비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보도자료 편집과 검증 부재가 계속된다면 '업계의 찌라시'라는 꼬리표는 영원히 굳어질 것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독립성, 데이터, 분석을 중심으로 업계 의사결정에 바로 쓰일 기준선을 제공한다면, 여러분은 다시 업계의 나침반이 될 수 있습니다.

선택은 명확합니다. 익숙한 관성 속에서 사라질 것입니까? 아니면 표류를 인정하고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낼 것입니까? 부디 후자를 택하기를 바랍니다.

덧붙이는 말: 이 글이 부디 날카로운 비판이 아닌, 오랜 시간 업계의 길을 밝혀온 여러분의 헌신에 보내는 안타까운 충고로 읽히기를 바랍니다. 본질은 비판이 아닌, 다시 한번 업계의 중심에 서달라는 간절한 응원임을 기억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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