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은 외면, 정부만 바라보는 협회: KATA의 위기 해부
한국여행업협회(KATA)는 1991년에 설립됐다. 협회의 목적은 두 가지였다. 여행자 서비스 품질을 높이는 공익적 가치, 그리고 회원사 권익을 지키는 사익적 가치다. 처음부터 두 목표는 충돌할 여지가 있었다. 협회는 정부와 업계의 가교를 자처했지만, 시간이 흐르며 그 역할에 대한 논란이 커졌다.

1. 설립 배경과 이중 목표
KATA는 1991년 12월 21일 교통부 산하 사단법인 ‘한국일반여행업협회’로 출발했다. 초대 회장은 여행업계 전문지 ‘여행신문’의 창립 발행인을 겸하며 업계 여론 형성에도 기여했다. 단순한 이익단체를 넘어서려는 의지가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설립 취지에는 모순이 있었다. 첫째는 “내외국인 여행자 서비스 향상”이라는 공익적 가치였다. 둘째는 “회원사 권익 보호와 상호 협력”이라는 사익적 목표였다. 두 축은 시장 환경 변화 속에서 쉽게 충돌할 수 있었다. 실제로 회원사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과정에서 소비자에게 불리한 약관이 유지될 수 있었고, 이는 곧 협회와 소비자 간 갈등으로 이어졌다. 결국 협회는 “공익보다 사익을 우선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었다.

2. 현재 기능과 한계
오늘날 KATA는 업계의 공식 대변인 역할을 한다. 차기 정부를 향해 여행산업을 국가 핵심 전략산업으로 지정해달라 요청하며 여섯 가지 과제를 제시했다. 여기에는 관광 컨트롤타워 구축, 관광 담당 차관 임명, 여행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법제 정비, 관광 수출 지원단 운영 등이 포함됐다. 협회는 거시적 제도 개선과 정책 지원을 끌어내는 데 집중하고 있다.
협회는 통계청으로부터 여행업 실적 통계를 국가 승인 통계로 인정받았다. 또 행정안전부로부터 개인정보보호 위탁기관으로 선정되어 개별 여행사의 취약한 개인정보 관리 문제를 대신 조치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회원사 권익 보호를 위해 소비자 단체와 충돌한 사례도 있다. 한국소비자원이 항공권 발권 대행수수료 미환급 정책을 개선하라고 권고하자, 협회는 위원회를 소집해 회원사 의견을 수렴했다. 이후 법률 자문을 거쳐 소비자원 권고가 강제력이 없다는 점을 회원사에 알렸다. 국제적으로는 ‘한대만관광교류회의’를 열며 해외 관광업계와 정보를 교환했다. 지역 차원에서는 충청남도와 관광객 유치 및 공동 마케팅 협약을 체결했다. 이 과정에서 충남도가 KATA 특별회원으로 가입해 4,600여 회원사와 연결될 기회를 확보했다.
그러나 이런 활동은 대부분 정부나 지자체와의 협력에 의존한다. 협회 스스로 회원사 수익을 직접 끌어올리는 사업은 드물다. 정부 의존 구조가 강화되며 자율성과 혁신 동력은 약화됐다.
3. 비판의 근원
- 관치 논란
2004년 이후 KATA의 상근부회장직은 2017~2019년 초를 제외하고 대부분 문체부 출신 인사가 차지했다. 독립성 훼손 논란이 불거졌다. 실제로 문체부 출신이 재직하지 않았던 기간과 비교해, KATA가 대행한 정부 지원 사업 규모는 3배 늘었다. 협회가 ‘정부 사업 로비 창구’라는 의혹을 받은 이유다. 더 나아가 2016년부터 5년간 ‘우수여행사 선정 사업’에서 121개 업체 중 비회원사는 단 3곳뿐이었다. 전국 2만여 여행사 중 1천여 정회원만 혜택을 독식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 회원사와의 괴리
협회는 내부 이익을 우선하는 태도로 비판을 받았다. 사무처는 직원 정년을 업계 평균(55세)보다 높은 60세로 늘리려다 무산됐다. 코로나19로 회원사들이 감원과 무급휴가에 시달리던 때였다. 협회 임직원만 공무원처럼 보호받으려 했다는 불만이 터졌다. 회비 납부율도 절반에 그쳤다. 한 회장 후보는 “KATA가 회원사에 해주는 게 없다”고 직격했다. - 시장 변화 대응 부족
KATA는 글로벌 OTA의 시장 지배력을 문제 삼으며 불공정 거래를 주장했다. 그러나 OTA 측은 “계약에 따른 것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협회는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결국 혁신 전략은 부족한 채, 기존 질서를 지키려는 방어적 태도만 드러냈다.
이 세 가지 축은 맞물려 ‘변질’ 논란을 키웠다. 정부 의존, 내부 불투명성, 회원사 외면이라는 악순환이 굳어졌다.
4. 해외 사례 비교
미국여행사협회(ASTA)는 KATA와 달리 회원 중심이다. ASTA는 세 가지 가치를 내세운다. 첫째, 옹호와 신뢰(Advocacy & Credibility). 지방정부부터 의회까지 모든 단계에서 회원 권익을 대변한다. 매년 워싱턴 ‘Capitol Hill’에서 로비 행사를 연다. 둘째, 회원사 전용 혜택(Membership Perks). 보너스 커미션, 독점 자료 제공 등 회원사 수익에 직접 연결되는 혜택을 준다. 셋째, 교육(Education). 업계 인증, 실무 기술, 전문성 강화를 돕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이런 이유로 회원사들은 자발적으로 회비를 낸다. 협회가 존재 이유를 증명하기 때문이다. 반면 KATA는 정부 사업 대행에 치중한다. 결과적으로 하나는 ‘시장 중심 모델’, 다른 하나는 ‘관 주도 모델’이라는 차이가 드러난다.
결론
KATA는 태생적 모순과 정부 의존 구조 속에서 신뢰를 잃었다. 이를 극복하려면 세 가지 변화가 필요하다. 첫째, 운영을 투명하게 해야 한다. 낙하산 인사를 막고, 회원사 의견이 반영되는 체계를 세워야 한다. 둘째, 회원사에 실질적 가치를 주는 사업으로 전환해야 한다. 교육, 컨설팅, 신규 비즈니스 모델 지원 등이 그 예다. 셋째, 디지털 전환 시대에 맞는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OTA와 대립하기보다 협력과 상생 방안을 찾아야 한다.
정부의 대리인에서 업계의 파트너로 변해야 한다. 그래야 KATA는 설립 당시의 공익과 사익을 동시에 실현하며, 업계 리더로 다시 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