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상담에 돈을 내라고? 3만원이 던지는 낯선 질문

"50분에 3만원입니다." 최근 서울 압구정(신사동)에 문을 연 한 여행 라운지의 상담 비용이다. 당신이라면 이 돈을 내고 여행 상담을 받겠는가? 아마 많은 이들이 고개를 갸웃할 것이다. '어차피 인터넷 뒤지면 다 나오는 정보인데, 왜?'

여행 상담에 돈을 내라고? 3만원이 던지는 낯선 질문
“50분에 3만원입니다” 여행상담 유료화, 정착할 수 있을까?
자유여행 전문 여행사 블루여행사가 7월 중순 경 ‘라루트 트래블 라운지’를 오픈하고 여행 상담 유료 서비스를 시작했다. 아직 도입 초기 단계지만 그동안 여행업계에서는 상담 유료화에 대해 고민이 컸던 만큼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여행업계는 그간 전문적인 상담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고도 이에 대한 비용을 소비자들에게 청구하지 못하는 현실에 갈증을 느꼈다. 항공·호텔·이동수단 등 다양한 요소를 종합적으로 살피고 소비자가 원할 경우 세부적인 내용을 포함한 견적서도 작성하는 등 적잖은 품이 들지만, 여행 상담비만

이 3만원이라는 가격표는 단순히 돈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 10년간 OTA(온라인 여행사)의 파도 속에서 침몰 직전까지 갔던 여행사들이 던지는, 어쩌면 처절한 생존의 질문이다. 그리고 우리 소비자들에게는 '전문가의 시간과 지식'의 가치를 어떻게 볼 것인지 묻는 낯선 질문이기도 하다.

나 역시 여행업계 언저리에서 이 변화를 오랫동안 지켜봐 왔다. 오늘은 이 논쟁적인 주제에 대해 조금 더 깊게, 그리고 솔직하게 파고 들어가 보려 한다.

우리는 왜 '공짜 상담'에 익숙해졌을까?

솔직해지자. 우리는 여행사의 '무료 노동'에 너무나 익숙하다. 업계에서는 이것을 '그림자 노동'이라고 부른다.

고객이 "이탈리아 10일 일정 좀 짜주세요"라고 한마디 툭 던지면, 여행사 직원은 며칠 밤낮으로 수십 개의 항공권을 비교하고, 동선에 맞는 호텔을 찾고, 구글맵에 별을 찍어가며 최적의 루트를 그린다. 그렇게 피와 땀이 담긴 견적서를 받아 들고는 "고맙습니다" 한마디 남기고 더 저렴한 사이트에서 예약해버리는 일. 업계에서는 이를 '쇼루밍(Showrooming)'이라 부르며 자조 섞인 한숨을 내쉰다.

이건 소비자가 유별나게 악해서가 아니다. 시장이 그렇게 만들었다. 익스피디아, 아고다, 스카이스캐너 같은 글로벌 OTA들이 쓰나미처럼 밀려오면서, 정보는 더 이상 소수 전문가의 전유물이 아니게 됐다. 클릭 몇 번으로 전 세계 항공권과 호텔 가격을 실시간으로 비교하는 시대. 여행 계획은 더 이상 '전문가의 영역'이 아닌 '손품 파는 노동'이 되었다.

데이터는 이 현실을 더 명확히 보여준다. 한국소비자원 조사에서 여행 플랫폼 선택 기준 1위는 압도적으로 '가격'(47.9%)이었고, '더 저렴해서' 다른 플랫폼으로 옮겼다는 응답도 43.5%에 달했다. 가격이 왕인 시장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상담'에 돈을 내라는 요구는 어색하고 심지어 부당하게 들릴 수밖에 없다.

실패의 기억: JTB의 뼈아픈 교훈

사실 이 시도는 처음이 아니다. 2019년, 일본 최대 여행사 JTB가 야심 차게 유료 상담을 도입했다. 모델도 지금과 비슷했다. 해외여행 상담에 5,400엔(약 5만원)을 먼저 받고, 실제 예약을 하면 그 돈을 돌려주는 방식. 심지어 일본은 '여행업무취급요금'을 받을 수 있는 법적 근거까지 있었다. "원래 유료인데 관행상 안 받았을 뿐"이라는 명분도 있었다.

결과는? 처참한 실패였다. 고객 방문이 뚝 끊겼고, JTB는 서비스를 시작한 지 불과 7개월 만에 백기를 들었다.

나는 이 실패가 한국 여행업계에 깊은 트라우마를 남겼다고 본다. 우리와 시장 환경이 비슷한 일본에서, 업계 1위가, 가장 정교한 모델로 시도했는데도 소비자의 외면을 받았다는 사실. 이는 '상담 유료화는 아직 시기상조'라는 강력한 심리적 억제제로 작용했다. 그 누구도 JTB의 전철을 밟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왜 다시? 무엇이 달라졌나?

그렇다면 묻게 된다. "과거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왜 또다시 유료 상담 카드를 꺼내 드는 걸까?"

나는 이것이 '여행사'라는 업의 본질을 바꾸려는, 정체성의 전환을 위한 시도라고 해석한다. 더 이상 항공권과 호텔을 대신 예약해주는 '대리인(Agent)'이 아니라, 고객의 시간과 돈을 아껴주고 최고의 경험을 설계해주는 '자문가(Advisor)'로 거듭나겠다는 선언이다.

최근 문을 연 '라루트 트래블 라운지'의 전략은 과거보다 훨씬 영리하고 정교하다. 첫째, '여행사'라는 간판을 떼었다. 프리츠한센 의자와 아르떼미떼 조명으로 채운 '라운지'에서 '경험'을 판다. 낡은 이미지를 벗고, 상담 행위 자체를 특별하고 고급스러운 것으로 포지셔닝하려는 의도다. 둘째, 심리적 장벽을 낮췄다. 3만원 상담비는 예약 시 현금처럼 쓸 수 있는 포인트로 전환된다. '사라지는 비용(sunk cost)'이 아니라 '미래 여행을 위한 보증금(deposit)'처럼 느껴지게 설계한 것이다. 동시에 이 3만원은 정말 여행을 갈 진성 고객만 걸러내는 필터가 된다. 직원은 소모적인 응대를 줄이고, 진짜 고객에게 집중하며 서비스의 질을 높일 수 있다.

유료 상담이 통하는 곳은 따로 있다

물론 이 모델이 모든 여행에 통용될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아마 대부분의 평범한 여행은 여전히 OTA의 차지일 것이다. 하지만 전문가의 도움이 절실한, 그래서 기꺼이 돈을 낼 만한 특정 영역이 분명히 존재한다.

  • 신혼여행: 통상 2인 기준 800~1,000만원을 훌쩍 넘는, 일생에 한 번뿐인 여행이다. 여기서의 실수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수많은 선택지 앞에서 길을 잃었을 때, 전문가의 조언은 '실패하지 않을 권리'를 사는 것과 같다.
  • 부모님 칠순/환갑 여행: 당신이라면 70대 부모님과 어린 자녀를 모두 만족시키는 여행을 쉽게 계획할 수 있겠는가? 연령대별 체력, 식성, 관심사를 모두 고려한 동선, 식사, 숙소, 활동까지… 이건 개인이 해결하기엔 너무나 복잡한 방정식이다. 이럴 때 전문가의 역할은 빛을 발한다.
  • 기존 서비스에 대한 불신을 해결할 때: "고객센터 연결이 안 돼요", "갑자기 예약이 취소됐어요". 여행 플랫폼 이용자 10명 중 1명 이상이 겪는 불만이다. 유료 상담은 바로 이 지점을 파고들 수 있다. 상담비는 단순히 정보를 사는 비용이 아니라, '내 여행을 끝까지 책임져 줄 전문가'를 고용하는 비용이 될 수 있다. 귀찮고 복잡한 문제 발생 시, 나를 대신해 싸워줄 든든한 내 편이 생기는 것이다.

이미 미국 여행사의 50%, 유럽 여행사의 66%가 상담비를 받는다. 그들은 스스로를 'Travel Advisor'라고 부른다. 특정 상품 판매 수수료에 얽매이지 않고, 오직 고객의 편에서 최고의 솔루션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보상받는다. 정액 컨설팅비, 연간 구독료 등 다양한 모델이 존재한다. 이것이 한국의 유료 상담 모델이 나아가야 할 방향일 것이다.

결론: 두 갈래로 나뉠 여행의 미래

나는 여행 시장이 결국 두 개의 길로 나뉠 것이라 본다.

첫 번째 길은 OTA가 지배하는 '대중 시장'이다. 이곳의 언어는 '가격'이다. 표준화된 상품을 누가 더 싸게 파느냐의 치열한 전쟁이 계속될 것이다.

두 번째 길은 고도로 전문화된 '자문 시장'이다. 이곳의 언어는 '가치'와 '신뢰'다. 복잡하고 중요한 여행, 실패하고 싶지 않은 여행을 앞둔 고객들이 '여행 부티크'의 문을 두드릴 것이다. 이들에게 상담비는 단순한 '비용'이 아니라, 완벽한 경험을 위한 '가치 있는 투자'로 인식될 것이다.

한남동신사동의 3만원짜리 상담은 이 두 번째 길을 향한, 한국 시장 최초의 의미 있는 '시제품(prototype)'이다. 이 시도가 성공할지 실패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공짜'라는 안락한 관행에 기댈 수 있는 시대는 끝났다는 것. 이제 여행업은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증명해야만 하는, 진짜 시험대에 올랐다.

추가정보

젋은여행사블루(젊은 여행사라고 하지만 93년에 창업한 배낭여행 1세대 여행사입니다.) 에서 문을 연 라운지는 라루트 트래블라운지 라는 이름으로 압구정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아래 지도를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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