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의 새로운 여정: 1) 프리미엄 여행 시장으로의 도전
최근 유통 대기업 신세계가 '비아 신세계(VIA SHINSEGAE)'라는 이름으로 여행업에 뛰어든다는 소식, 다들 들어보셨을 겁니다. 이는 단순한 사업 확장을 넘어, 유통 거인의 중대한 전략적 변화를 의미하는데요. 오늘 이 시간에는 신세계가 왜 이런 결정을 내렸는지, 그리고 과연 성공할 수 있을지 함께 깊이 파고들어 보겠습니다.

1. 신세계는 왜 '여행'을 선택했을까요?
신세계의 여행업 진출은 단순히 새로운 사업을 하나 늘리는 차원이 아닙니다. 여기에는 아주 치밀한 계산과 절박한 이유가 숨어있죠.
1.1 백화점을 넘어,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아라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주력 사업인 백화점 부문의 성장 정체입니다. 신세계백화점의 매출은 최근 몇 년간 사실상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었어요. 포화 상태인 국내 유통 시장의 한계가 명확해진 것이죠. 이런 상황에서 기업이 생존하고 계속 성장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맞습니다.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야만 합니다. 신세계에게 여행업은 바로 그 '새로운 성장 동력'을 위한 필연적인 선택이었던 셈입니다.
1.2 상품이 아닌 '경험'을 파는 라이프스타일 플랫폼으로의 진화
신세계는 이제 자신들을 단순히 물건을 파는 곳이 아닌, '라이프스타일 플랫폼'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쇼핑 그 이상의 경험'을 제공해서 고객의 삶 전반에 깊숙이 관여하겠다는 아주 큰 그림이죠. '비아 신세계'가 내건 슬로건, '배움과 철학을 얻는 차별화된 경험을 제공하는 여정'을 보면 그 의도가 명확히 드러납니다. 이제 럭셔리 시장의 경쟁력은 상품이 아니라, 브랜드가 제공하는 특별한 '경험'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여행은 바로 그 경험의 정점에 있는 상품이고요.
1.3 132만 VIP 고객, 가장 강력한 무기
신사업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바로 '첫 고객'을 확보하는 일입니다. 하지만 신세계는 이 문제를 아주 쉽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 이미 확보된 132만 명의 충성도 높은 VIP 고객이 있기 때문이죠. 이건 정말 엄청난 자산입니다. 신세계는 이 VIP 고객들을 묶어두기 위해 아주 강력한 유인책을 내놓았습니다. '비아 신세계' 여행 상품 구매 금액의 최대 100%를 VIP 실적으로 인정해주는 제도인데요. VIP 고객 입장에서는 다른 여행사를 이용할 이유가 없어지는, 강력한 '락인(Lock-in) 효과'를 만들어내는 겁니다.
1.4 그룹 자산과의 시너지, '플라이휠'을 돌려라
많은 분들이 간과하지만, 유통과 여행은 생각보다 시너지가 큰 사업입니다. 신세계 그룹은 이미 조선호텔앤리조트라는 훌륭한 관광 자산을 가지고 있죠. 자체 호텔을 여행 패키지에 포함시키거나, 여행 고객에게 면세점 쿠폰을 제공하는 식으로 상품 경쟁력을 높일 수 있습니다. 고객은 신세계라는 브랜드를 믿고 숙박부터 쇼핑까지 한 번에 해결할 수 있고요. 이렇게 여행 사업이 백화점과 면세점으로 고객을 유도하고, 이는 다시 여행 사업의 성장을 이끄는 선순환 구조, 즉 '플라이휠(Flywheel) 효과'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2. '비아 신세계'는 무엇이 다를까요?
그렇다면 신세계가 내놓은 '비아 신세계'는 기존 여행 상품과 어떻게 다를까요? 핵심은 '초(超)큐레이션'과 '경험 설계'에 있습니다.
2.1 '마스터피스'와 '오리진': 아무나 할 수 없는 여행
'비아 신세계'는 상품을 '마스터피스(Masterpiece)'와 '오리진(Origin)' 두 등급으로 명확히 나눴습니다.
- 마스터피스: 말 그대로 '걸작'입니다. 북극 탐험이나 F1 경기 특별 관람처럼, 평생 한번 경험하기 힘든 초프리미엄 일정으로 구성됩니다. 가격 비교 자체가 무의미한, 독점적인 경험을 제공하는 거죠.
- 오리진: 일반 패키지와는 결이 다릅니다. 웰니스, 예술, 인문학 등 특정 테마를 중심으로 신세계만의 색깔을 입힌 콘텐츠로 채워집니다. 예를 들어, 노화 방지 분야의 최고 권위자와 함께 떠나는 웰니스 투어 같은 것들이죠.
이처럼 '비아 신세계'는 단순한 여행 상품이 아니라, 온라인에서 쉽게 검색하고 비교할 수 없는 '독창성(Uniqueness)' 그 자체를 판매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습니다.
2.2 여행의 전 과정을 책임지는 '완벽한 서비스'
'비아 신세계'의 진짜 경쟁력은 상품을 넘어 서비스의 전 과정에 있습니다. 출발 전에는 '프리뷰 아카데미'라는 사전 설명회를 열어주고, 여행 중에는 전용 차량과 공항 수속 지원은 기본, 최고의 숙소와 식사를 제공합니다. 놀라운 점은 여행이 끝난 후에도 백화점 문화 행사와 연계해 여행의 여운을 이어갈 수 있도록 설계했다는 점입니다. 이처럼 '여정 전체의 품격'을 설계하는 것, 이것이 바로 신세계가 추구하는 차별점입니다.
3. 대기업의 여행업 도전, 과거의 교훈은 무엇일까요?
사실 대기업의 여행업 진출은 신세계가 처음이 아닙니다. 지난 10년간 수많은 대기업이 도전했지만, 결과는 엇갈렸습니다. 이들의 성공과 실패 사례는 신세계에게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3.1 성공의 열쇠: 멤버십, 데이터, 그리고 생태계
해외 사례를 보면 성공 공식은 명확합니다. 코스트코, 라쿠텐, 알리바바 같은 기업들이 대표적이죠.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바로 자사가 가진 강력한 멤버십, 고객 데이터, 그리고 기존 사업과의 연계(생태계)를 십분 활용했다는 점입니다. 코스트코는 멤버에게만 파격적인 가격의 여행 상품을 제공하고, 라쿠텐은 쇼핑 포인트를 여행에 쓰게 만들었죠. 신세계의 전략이 바로 이 성공 모델과 아주 유사합니다.
3.2 실패의 함정: B2C 시장의 어려움과 차별화 부족
반면 실패한 사례도 많습니다. 국내에서는 SK그룹이나 현대백화점그룹이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B2C 여행 시장에 뛰어들었다가 쓴맛을 봤습니다. 치열한 가격 경쟁과 낮은 수익성을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사업을 축소하거나 철수했죠. 글로벌 거인 아마존 역시 '아마존 데스티네이션'이라는 호텔 예약 서비스를 내놓았지만, 기존 여행사들과의 차별점을 보여주지 못하고 6개월 만에 사업을 접었습니다.
이 사례들은 우리에게 중요한 점을 시사합니다. 막대한 자본과 브랜드만 믿고 섣불리 뛰어들면 실패하기 쉽다는 것, 그리고 '우리만의 무기'가 없다면 살아남기 어렵다는 것이죠. 신세계는 이 실패 사례들을 반면교사 삼아, 대중 시장이 아닌 '프리미엄 틈새 B2C 시장'이라는 제3의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4. 최종 전망: 그래서, 신세계는 성공할 수 있을까요?
자, 이제 모든 조각을 맞춰볼 시간입니다. 신세계의 여행 사업,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요? SWOT 분석을 통해 강점과 약점, 기회와 위협 요인을 종합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 강점(Strengths): 무엇보다 탄탄한 VIP 고객 기반과 '신세계'라는 강력한 브랜드 신뢰도가 가장 큰 무기입니다. 여기에 VIP 실적 연계라는 강력한 락인(Lock-in) 효과와 차별화된 콘텐츠 기획력은 경쟁사가 쉽게 따라오기 힘든 부분입니다.
- 약점(Weaknesses): 역시 여행업 전문성 부족이 가장 큰 아킬레스건입니다. 유통 전문가가 여행 상품을 운영하면서 겪게 될 시행착오는 분명히 존재할 겁니다. 또한 지나치게 높은 가격은 시장을 스스로 제한하는 요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 기회(Opportunities): 다행히 시장 상황은 우호적입니다. 팬데믹 이후 프리미엄 여행 수요가 폭발하고 있고, 물질 소유보다 '경험'에 투자하는 소비 트렌드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는 '비아 신세계'에게 아주 좋은 기회입니다.
- 위협(Threats): 하지만 경쟁이 만만치 않습니다. 하나투어의 '제우스' 같은 기존 강자들과의 틈새시장 경쟁은 매우 치열할 것이고, 여행업은 본질적으로 경기 변동이나 외부 충격에 매우 취약하다는 리스크를 안고 있습니다.
결론: 성공 가능성은 높지만, '실행력'이 관건
결론적으로, 신세계의 여행업 진출은 과거 대기업들의 실패를 철저히 분석하고, 해외 성공 사례의 핵심을 정확히 벤치마킹한 매우 정교한 전략이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확보된 부유층'에게 '가격 비교가 불가능한 독창적 경험'을 판매함으로써, 과거 대기업들을 좌초시켰던 '가격 경쟁'이라는 함정을 영리하게 피해 갔습니다.
따라서 성공 가능성은 상당히 높다고 봅니다. 하지만 이 모든 정교한 전략의 성패는 결국 '운영 실행력(Operational Execution)'에 달려있을 겁니다. '신세계'라는 이름과 비싼 가격표에 걸맞은,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완벽한 서비스를 현장에서 실제로 구현해낼 수 있느냐가 최종 성공의 열쇠가 될 것입니다. 국내 유통업의 역사를 새로 쓴 신세계가 여행업에서도 새로운 성공 신화를 쓸 수 있을지, 앞으로의 행보가 더욱 주목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