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여행사를 떠나지 못하는가: ‘전문성’이라는 아름다운 함정
지난번 '여행업계 채용 대란'에 대한 글을 올린 후, 예상보다 많은 분들이 공감을 표해주셨다. 업계가 사람을 구하지 못하는 구조적 문제에 대한 씁쓸한 인정이었다. 그런데 몇몇 메일은 내게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들어오지 않는 것도 문제지만, 남아있는 사람들이 떠나지 못하는 것은 더 큰 비극 아닐까요?"


오늘, 나는 바로 그 질문에 답하고자 한다. 동전의 반대편, 즉 여행사 직원들이 왜 이직이라는 출구를 쉽게 찾지 못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이것은 단순히 구조의 문제만이 아니다. 그 구조 속에서 개인의 역량이 어떻게 아름답게 포장된 채 서서히 고립되는지, 그 ‘갈라파고스화’의 비극에 대한 이야기다.
함정의 설계도: 저마진, 하청, 그리고 관계주의
문제의 핵심은 지난번 글에서 지적했던 여행업의 수익 모델, 그 자체에서 시작된다. '박리다매'. 이 네 글자는 업계의 모든 비극을 압축한다. 항공권, 호텔 등 높은 원가를 제외하면 여행사 손에 쥐어지는 실제 수익은 얼마 되지 않는다. 겉보기엔 수백억 매출을 올리는 거대 기업처럼 보이지만, 그건 물을 잔뜩 머금은 스펀지와 같다. 꽉 짜보면 실제 손에 떨어지는 이익은 몇 방울 되지 않는 ‘회계적 착시’일 뿐이다. 이익률이 낮으니 높은 임금을 줄 수 없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40개 업종 중 평균 연봉이 꼴찌라는 데이터는 이 구조가 낳은 필연적 결과일 뿐이다.
이러한 저마진 구조는 '피라미드 하청'이라는 독특한 공급망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유지된다. 국내 여행사-현지 랜드사-가이드로 이어지는 이 구조는, 마치 잘 짜인 연극 무대처럼 효율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무대는 시스템이 아닌 ‘관계’와 ‘인맥’이라는 보이지 않는 줄에 의해 움직인다. 태국의 어느 핵심 랜드사 대표가 마음이 틀어져 계약을 끊으면, 동남아 여름 성수기 상품 전체가 마비될 수 있는 리스크를 안고 돌아가는 전근대적인 방식이다.
이 폐쇄적인 생태계 안에서 OP(오퍼레이터)가 현지 랜드사와 다년간 쌓은 유대감, 영업 사원이 대리점 사장님과 나눈 술잔의 깊이. 이 모든 것은 분명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전문성’이다. 하지만 그건 이 연극 무대 안에서만 통용되는 암호와 같다. 무대 밖으로 나서는 순간, 그 전문성은 증명할 길 없는 무형의 자산으로 전락하고 만다.
구조가 만든 '만능 전문가'의 비극, 그리고 역량의 정체
이런 조직 구조는 필연적으로 ‘맥가이버 칼’ 같은 만능인을 요구한다. 한 명의 직원이 상품 기획부터 현지 수배, 고객 불만 처리까지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한다. 그들은 스스로를 'PM(프로젝트 매니저)'이라 부를 만큼 복합적인 업무를 수행한다. 하지만 이것은 체계적인 경력 개발의 결과가 아니라, 시스템의 부재를 개인이 몸으로 때우는 것에 가깝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 ‘만능’이 되는 과정에서 정작 타 산업에서 통용될 날카로운 ‘수술용 메스’ 같은 핵심 역량을 기를 기회를 박탈당한다는 점이다. 내가 아는 한 10년 차 OP는 아이슬란드 화산 폭발로 발이 묶인 수백 명의 승객을 하루 만에 대체 항공편으로 재배치하는 괴력을 발휘했다. 그는 영웅이었다. 하지만 그에게 "이 상품의 온라인 광고 전환율은 얼마였나요?"라고 묻자, 그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의 영웅적 행위는 철저히 아날로그 방식이었고, 그의 능력은 데이터가 아닌 경험과 직관이라는, 측정 불가능한 영역에 머물러 있었다.
당장의 위기 해결과 예약 처리에 급급한 나머지, 디지털 마케팅, 재무 분석, 사업 기획과 같은 고부가가치 역량을 쌓을 시간도, 필요성도 느끼지 못하는 환경에 방치된다. 회사는 개인의 성장을 지원하기보다, 당장 눈앞의 불을 끌 '소방수' 역할만을 강요한다. 그 결과, 그들의 맥가이버 칼은 점점 녹슬어 간다.
외부 충격에 여실히 드러난 민낯
이 취약한 구조는 마치 화려한 모래성 같았다. 맑은 날에는 더없이 웅장해 보였지만, 코로나19라는 첫 파도가 밀려오자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내렸다. 회사는 가장 먼저 직원을 내보냈고, 관광산업 종사자의 30%가 일자리를 잃었다. 이는 단순히 운이 나빴던 것이 아니다. 외부 변수에 대한 최소한의 완충장치조차 없는, 오직 맑은 날만을 가정한 비즈니스 모델의 필연적 파산이었다.
산업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지금, 업계로 돌아오지 않는 이들을 탓할 수 있는가? 오히려 놀라운 것은, 아직도 이 모래성을 다시 쌓으려 애쓰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개인의 노력만 강요하는 무책임한 대안
물론 희망적인 이야기도 들린다. 정부가 국비 지원 교육을 해주고, OTA나 관광 벤처가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업계가 개인의 역량 개발을 등한시한 결과, 많은 이들은 어떤 교육을 받아야 할지조차 막막해한다.
이런 상황에서 "스스로의 역량을 재해석하고 브랜딩하라"는 조언은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떠넘기는 무책임한 이야기에 불과하다. 그것은 평생 창과 방패만 쥐여주고 훈련시킨 병사에게, 갑자기 드론과 미사일이 오가는 현대전에 나가면서 "당신의 창을 다용도 멀티툴이라고 생각하고 싸워라"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얼마나 공허하고 잔인한가.
결국 본질은 바뀌지 않았다. 여행업은 여전히 사람을 갈아 넣어 이윤을 내는 구조 위에 서 있다. 새로운 인재가 들어오지 않는 것과, 있던 인재가 나가지 못하는 것은 결국 같은 문제의 다른 얼굴일 뿐이다. 구조적 문제와 그 안에서 정체될 수밖에 없는 개인 역량의 문제라는 이 ‘유리 감옥’을 업계 스스로가 깨부수지 않는 한, "저 이직할 수 있을까요?"라는 절규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