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여행을 만들지만, 운영하지는 않는다

AI가 항공, 호텔, 액티비티를 검색하고 내 취향에 맞는 여행 일정까지 만들어준다면, 우리는 앞으로도 패키지여행을 선택할까요? 가격도 개인화도 AI가 만든 여행이 앞선다면 패키지의 경쟁력은 무엇일까요. 답을 찾다 보니 의외로 AI가 가장 잘하지 못하는 영역에 패키지여행의 미래가 있었습니다.

AI는 여행을 만들지만, 운영하지는 않는다

지난 9월 뉴욕에서 열린 Skift Global Forum 2026에서 눈에 들어온 질문이 하나 있었다.

Uber: Owning More of the Travel Journey
Every travel company that controls its own inventory is facing the same decision: let AI agents book it, or keep customers in the direct channel.

AI가 여행의 탐색과 예약을 대신하기 시작하면, 여행 브랜드는 고객과의 관계를 계속 가져갈 수 있을까?

요즘 여행업계가 AI를 바라보는 고민을 꽤 잘 보여주는 질문이라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여행을 준비하려면 일단 여행 플랫폼에 들어갔다. 목적지를 검색하고 날짜를 넣는다. 항공권을 비교하고 호텔을 찾아본다.

그 과정에서 OTA(Online Travel Agency)는 자연스럽게 고객의 여행 의도를 가장 먼저 알 수 있었다.

그런데 AI가 이 순서를 바꾸고 있다.

“11월에 부모님과 일본에 가고 싶어. 3박4일 정도면 좋겠고, 너무 많이 걷지 않았으면 좋겠어. 하루 정도는 온천에서 묵고 싶고 예산은 1인당 100만원 정도야.”

앞으로는 이런 식으로 여행을 시작하는 사람이 점점 많아질 수 있다.

항공권부터 검색하지 않는다. 호텔부터 찾지도 않는다.

그냥 내가 어떤 여행을 하고 싶은지 AI에게 먼저 이야기한다.

그러면 AI가 항공권을 찾고 호텔을 비교한다. 이동 동선을 만들고 필요한 교통편과 액티비티까지 찾아준다.

여행자를 가장 먼저 만나는 서비스가 OTA에서 AI로 바뀌는 셈이다.


OTA가 아니라 ATA가 되는 과정

이런 관점에서 최근 글로벌 OTA들의 움직임을 보면 조금 다르게 보인다.

Agoda는 AI Assistant를 테스트하고 있고 Expedia와 Booking Holdings 역시 여러 방식으로 AI를 여행 탐색과 예약 과정에 연결하고 있다.

Expedia Bets Against the All-Powerful AI Travel Agent
Speaking at the Skift Global Forum on Wednesday, Expedia CEO Ariane Gorin said she wants to work with the newest generation of AI agents — including
Booking CEO: Building the AI Travel Agent Isn’t the Hard Part
Booking Holdings CEO Glenn Fogel isn’t sweating the newer breed of buzzworthy AI agents and their trip planning and booking powers. Take Instinct, for

나는 이것을 OTA에서 ATA(AI Travel Agency)로 넘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모든 OTA가 ChatGPT 같은 AI를 직접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반대에 가깝다.

고객이 꼭 우리 앱에서 여행을 검색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AI가 고객과 대화하고 여행의 의도를 파악한다면 OTA는 AI가 필요로 하는 실시간 가격과 재고, 예약, 결제, 변경과 취소 같은 기능을 제공하면 된다.

그렇게 생각하면 API의 의미도 달라진다.

예전에는 플랫폼과 플랫폼을 연결하는 기술적인 수단에 가까웠다면, 앞으로는 AI에게 내 상품을 보여주는 새로운 매대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OTA의 고민도 달라진다.

“어떻게 다시 우리 앱으로 데려올까?”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해야 AI가 우리 상품을 선택하게 만들 수 있을까?”

이 질문도 중요해진다.

여기까지 생각하다가 문득 다른 여행업이 떠올랐다.

패.키.지.여.행.


AI가 여행을 다 만들어준다면 패키지는 왜 필요할까

사실 AI와 가장 궁합이 좋은 것은 단품 여행상품이다.

항공에는 출발시간과 도착시간, 가격이 있다. 호텔에는 위치와 객실, 가격과 편의시설이 있다. 철도, 렌터카, 액티비티도 대부분 비슷하다.

이 정보들이 API로 연결되면 AI가 조합하면 된다.

항공편 하나, 호텔 하나, 기차표 하나, 현지 투어 하나.

그리고 사람마다 다르게 조합하면 된다.

부모님과 간다면 걷는 시간을 줄이고, 아이와 간다면 가족 친화적인 호텔을 선택한다. 미술관에 관심이 없다면 빼고, 음식에 관심이 많다면 식당과 시장을 일정에 더 넣을 수도 있다.

여기서 기존 패키지여행과 상당히 큰 차이가 생긴다.

패키지는 기본적으로 같은 여행을 원하는 사람을 많이 모아야 유리한 상품이었다.

같은 날 출발하고, 같은 비행기를 타고, 같은 호텔에서 자고, 같은 버스를 타고 움직인다.

사람을 많이 모을수록 항공 좌석과 호텔 객실을 좋은 조건으로 확보할 수 있었고 그게 패키지의 가격 경쟁력이 됐다.

그런데 개별여행이 대세가 되면서 이런 방식의 경쟁력은 예전만큼 만들기 어려워졌다.

여기에 AI가 하나를 더 건드린다.

여행을 직접 짜는 귀찮음이다.

자유여행이 좋다는 건 누구나 안다.

내가 원하는 비행기를 타고, 원하는 호텔에서 자고, 가기 싫은 곳은 안 가면 된다.

문제는 귀찮다는 것이다.

항공권을 찾고 호텔을 비교하고 도시 간 이동 방법을 알아보고 일정을 짜야 한다. 처음 가는 나라라면 이것만으로도 꽤 많은 시간이 든다.

그래서 패키지를 선택하는 이유 중 하나는 분명했다.

편하니까.

그런데 그 귀찮은 일을 AI가 해준다면 어떻게 될까.

이 질문부터 패키지여행의 상황이 조금 복잡해진다.


더 싸지도 않은데, 내 마음대로 바꿀 수도 없다면

예를 들어 AI에게 부모님과 갈 스페인 8일 여행을 만들어달라고 했다고 해보자.

AI는 내가 원하는 항공편과 호텔을 찾고, 걷는 시간이 많지 않도록 동선을 짠다. 부모님이 좋아할 만한 관광지를 넣고 관심 없는 쇼핑 일정은 뺀다.

그렇게 만든 여행이 320만원이다.

그 옆에 여행사의 패키지가 350만원에 있다.

문제는 단순히 30만원이 비싸다는 데 있지 않다.

패키지는 호텔을 바꾸기 어렵고, 가고 싶지 않은 관광지도 일정에 포함돼 있을 수 있다. 출발시간도 정해져 있고 자유시간도 제한적이다.

예전에는 이런 불편을 감수할 이유가 있었다.

저렴하거나, 직접 여행을 준비하지 않아도 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격에서도 큰 차이가 없고 여행 준비까지 AI가 대신해준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AI 입장에서는 더 단순하다.

고객이 “패키지여행을 찾아줘”라고 하지 않는 이상 굳이 패키지와 자유여행을 구분할 이유가 없다.

고객은 그냥 이렇게 말할 가능성이 높다.

“70대 부모님과 스페인에 가고 싶어. 너무 많이 걷지 않았으면 좋겠고 1인당 350만원 정도 생각하고 있어.”

AI는 이 조건을 만족시키는 방법을 찾으면 된다.

완성된 패키지가 적합하면 패키지를 추천하고, 항공+호텔+현지투어를 조합하는 편이 낫다면 그렇게 만들면 된다.

그 순간 패키지의 경쟁 상대는 옆 여행사의 다른 패키지가 아니다.

AI가 만들어낼 수 있는 모든 여행 일정이 경쟁 상대가 된다.

여기까지 생각했을 때 나 역시 처음에는 패키지여행의 미래가 꽤 어둡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실제 여행을 생각해보니 AI가 쉽게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가 하나 남아 있었다.


여행을 만드는 것과 여행을 운영하는 것은 다른 일이다

AI가 꽤 괜찮은 유럽 여행을 만들어줬다고 생각해보자.

항공권을 사고 호텔을 예약했다. 공항 픽업도 예약했고 다음 날 현지 투어까지 잡아뒀다.

그런데 출발 당일 비행기가 결항됐다.

갑자기 해야 할 일이 많아진다.

항공사에 연락해야 한다. 첫날 호텔에 가지 못하니 호텔에도 알려야 한다. 공항 픽업도 취소해야 한다. 도착이 하루 늦어지면 다음 날 투어 일정도 바꿔야 할 수 있다.

각 상품에는 문제가 없다.

그런데 여행 전체에는 문제가 생겼다.

이게 재미있는 지점이다.

AI가 항공과 호텔과 액티비티를 아무리 잘 조합해도, 각각의 상품을 판매한 사업자는 자기 상품만 책임진다.

그리고 AI에게 책임을 물을 수도 없다.

결국 여행자가 직접 하나씩 해결해야 한다.

반대로 패키지여행에는 여행 전체를 보고 움직이는 사람이 있다.

비행기가 결항되면 대안을 찾고, 호텔에 문제가 생기면 조정하고, 현지에서 누군가 아프면 병원을 알아본다. 버스가 늦어지면 뒤의 일정을 다시 맞춘다.

여행상품을 검색할 때는 잘 보이지 않지만 실제 여행에서는 굉장히 중요한 일들이다.

여기서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패키지여행이 앞으로 팔아야 하는 것은 어쩌면 항공+호텔+관광지의 묶음이 아닐지도 모른다.

‘여행 중 무슨 일이 생겨도 내가 하나하나 해결하지 않아도 된다’는 경험.

나는 이게 패키지여행이 가진 가장 강한 상품성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이 능력이 검색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기서 또 다른 문제가 생긴다.

여행사의 현지 운영 능력은 어떻게 검색할까.

지금 여행상품 페이지에서 이런 표현을 자주 볼 수 있다.

‘20년 여행 노하우.’

‘전문 인솔자 동행.’

‘안심하고 떠나는 여행.’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내가 AI라면 이 정보만 가지고 어느 여행사가 현지 운영을 잘하는지 판단하기 어려울 것 같다.

오히려 이런 정보가 필요하지 않을까.

항공편이 결항되면 어디까지 대신 처리해주는지.

호텔 문제가 생기면 재예약을 지원하는지.

현지에서 아프면 의료기관 연결을 해주는지.

수하물이 분실됐을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한국어 상담은 몇 시까지 가능한지.

가이드가 어느 구간까지 동행하는지.

여행 중 일정이 틀어졌을 때 누가 다시 조정해주는지.

이런 것들은 지금까지 여행상품의 핵심 정보로 취급되지 않았다.

가격이나 항공편, 호텔 등급처럼 깔끔하게 데이터로 만들기도 어렵다.

그런데 AI가 상품을 대신 찾아주는 시대에는 오히려 이런 비정형적인 운영 능력을 얼마나 잘 데이터로 표현하느냐가 중요해질 수 있다.

그래야 AI도 설명할 수 있다.

“직접 예약하면 320만원입니다. 이 패키지는 350만원으로 조금 더 비싸지만 전 일정 한국어 지원이 가능하고 항공편 변경이나 현지 숙박 문제가 발생하면 여행사가 대신 조정해줍니다. 부모님과 첫 해외여행이라면 이쪽이 더 편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설명된다면 30만원의 차이는 단순한 가격 차이가 아니다.

고객이 직접 떠안아야 했던 여행 중의 귀찮음과 위험을 누군가 대신 가져가는 비용이 된다.


AI는 여행을 만들지만, 운영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나는 AI 시대의 패키지여행이 가격 경쟁에만 매달리는 것은 좋은 전략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홈쇼핑에서 가격을 낮추고, 출발이 임박한 상품을 땡처리하고, 경쟁사보다 몇 만원 더 저렴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방식은 AI가 단품을 자유롭게 조합하는 환경에서 점점 힘을 잃을 수 있다.

오히려 그동안 가격 뒤에 가려져 있던 것을 앞으로 꺼내야 한다.

현지 운영 능력이다.

그리고 단순히 “우리는 현지 운영을 잘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으로도 부족하다.

무엇을 대신 해결해주는지, 어디까지 책임지는지, 문제가 생겼을 때 얼마나 빨리 대응하는지.

그동안 사람의 경험과 노하우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려져 있던 것들을 하나씩 꺼내 상품의 정보로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AI도 그것을 읽고 고객에게 설명할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AI가 패키지여행을 가장 위협하는 존재인 동시에, 좋은 패키지와 그렇지 않은 패키지의 차이를 가장 잘 설명해주는 판매자가 될 수도 있다.

여행을 검색하고 조합하는 능력에서는 사람이 AI를 이기기 어려워질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이 더 잘할 수 있는 곳에서 경쟁해야 한다.

여행에는 계획대로 되지 않는 일이 생각보다 자주 생긴다.

그리고 그 순간 필요한 것은 더 좋은 추천 알고리즘이 아니다.

누군가 실제로 움직여주는 것이다.

AI는 여행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아직, 여행을 운영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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